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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6

이은상 × 차준호



 "너 왜 나 피해?"


 주말 내내 앓았다. 그건 은상이나 준호나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 동안 비를 쫄딱 맞은 온전치 못한 몸상태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새로이 마주한 불안한 마음까지 더 해져 꽤 괴로웠다. 은상은 차마 준호를 마주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준호를 피했다. 내내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동생과 입을 맞추던 그 새벽의 순간을.

 은상은 제 앞을 막아선 준호를 조금 지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왜 학교 먼저 갔어?"

"……."

"아침도 안 먹었잖아, 너."

 

 준호는 은상을 향해 바나나 우유를 내밀어 보였다. 은상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것을 꽉 쥐고 있는 손이 작게 떨리는 모습을.


"너 먹어. 생각없어." 

"이은상."


 애써 냉정히 대꾸한 보람이 없게 등을 돌리자마자 준호는 다시 한 번 은상을 불러 세웠다. 괴로웠다. 매 순간 순간이. 그저 이쯤에서 준호도 한 번쯤 포기하고 돌아서 주길 바랐다. 더 차갑고, 더 모질어 지지 않도록. 네 얼굴에서 기어이 내가, 눈물까진 보지 않도록. 

 

"차준호."

"……."

"앞으로 함부로 내 이름 부르지마."

"뭐?"

"똑바로 형이라고 하라고." 


 준호는 저를 향해오는 차가운 말투와 차가운 눈빛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은상이 이러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답지 않은 모습에 가슴이 쓰리게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 진짜…"

"학교 끝나면 집에 먼저 가. 약속 있어."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다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창을 타고 들어서는 그 햇살을 등지고 돌아선 은상의 뒷모습을, 준호는 더이상 잡지 못하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결국 은상은 처음처럼 다시 곧게 서 있을 모양이었다. 이렇게 냉정히 준호에게 선을 그어서라도.






백색왜성 6

w. lovesome 






 담배가 더 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끊겠노라고 마음 먹었던 게 무색하게 자꾸만 손이 갔다. 은상은 수업도 들어가지 못한 채 홀로 텅 빈 옥상 위에서 뿌연 연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유치한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한 집에 살면서, 한 교실에서 옆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주제에 이런 식으로 피한다고 피해질 리도 없는데. 형이라고 부른다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다 알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준호를 바라보는 눈빛에 좀 더 냉정을 담는 것, 내뱉는 말들에 좀 더 가시를 세우는 것, 그리고…


[ 은상아. 왜 수업 안 들어와? 혹시 어디 아팠어? ]

[ 오늘 영화 볼 수는 있는 거지?  ]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 


 은상은 짧게 울린 진동과 함께 액정을 채워오는 톡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장이었다. 비가 쏟아지던 그 날 밤에 그저 정문 입구까지만 함께 우산을 쓴 게 전부였는데, 반장은 굳이 고맙다는 의미로 저녁을 사주겠다며 몇 번이고 연락을 해 왔다. 대충 의도를 알것 같아 그러라 했다. 영화 보잔 말은 은상이 먼저 했다.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 응. ]


 짧게 답장을 하나 보내고 담배를 시멘트 바닥에 짓이겼다. 그리고 벽에 기대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감겨진 눈 사이로 또 다시 준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냐고 묻는 그 얼굴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게 이상한 거냐고 묻는 그 얼굴이. 

 사랑이란 감정은 그 대상이 누구든 원래 이상하다. 너무 충분히. 밀어낸 다고 밀어지지도, 이해하려 한다고 이해 되지도 않으니까. 그러나 준호가 제게 느끼는 감정은 그런 이상한 사랑이 아니라 착각인 게 분명했다. 은상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갑작스런 이별로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은상을 향한 무형의 그리움을 간직해 오던 준호였다. 그 긴 시간이 거짓된 감정을 만들고,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하기만 한 준호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은상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믿어야만 지금의 이 혼란도 시간이 곧 해결해 줄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기니까.


 그러나 은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를 향한 준호의 감정이 그저 다 착각이라고 결론 내리면서도, 준호를 향한 제 감정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이 지독한 감정이… 정말 다 무엇인지. 

 그래서 은상은 그저 모른척 할 생각이었다.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감정 따위… 그저 홀로 앓고, 견디고, 감춰내면 그만이라고. 





** 




"은상이는 오늘 여자친구랑 약속 있다던데. 알고 있었어?"


 준호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여자애들이 반장 주변으로 몰려들며 유난을 떨어대는 탓에 준호도 대충 상황은 알고 있었다. 반장이 은상과 데이트를 한다는 것을.

 공부는 잘 하니? 얼굴은 예뻐? 은상이가 많이 좋아해? 끝없이 이어지는 엄마의 질문들에 준호의 피로가 제곱단위로 쌓여가는 것만 같다. 안그래도 충분히 심란하고, 충분히 기분이 안 좋은데 엄마까지 제 속을 모른다. 


"이은상이 엄마 아들이야? 왜 유난이야? 짜증나게." 

"응? 왜그래, 아들. 엄마가 뭐 잘못했어?"

"계속 이은상 얘기할거면 내려줘. 걸어갈 테니까." 

"…혹시 은상이랑 싸웠니?"

"아, 쫌…!"

"어휴.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미안해. 은상이 얘기 안 할게." 


 눈을 곱게 접으며 준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엄마의 얼굴에도 준호는 좀처럼 감정이 추슬러 지질 않았다. 엄마마저 미웠다. 은상과 묘하게 닮아있는 엄마의 얼굴 위로 은상의 얼굴이 겹쳐보이기까지 한다. 다 엄마 탓 같다. 엄마가 이은상의 고모라서. 엄마가 이은상의 아빠와 남매라서. 그래서 우리가 사촌인 거니까. 

 의미없는 원망임을 뻔히 알면서도 무엇이라도 탓하지 않고는 못 배길것 같았다. 준호는 애써 울컥하는 감정을 숨기며 눈물을 참아냈다. 하루종일 억울해 죽겠다. 먼저 마음을 꺼내놓은 건 자신이었지만, 입을 맞춘 건 은상이었으니까. 그것은 준호에게 첫키스였다. 열여덟을 살며 이성에게 어떤 호기심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여자친구 같은 것도 사귀어 봤을 리가 없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은상과 입을 맞췄던 그 새벽의 기억은 꿈 속에서나, 깨어 있는 시간 속에서나 여전히 준호의 곁에 환상처럼 맴도는데, 그 환상 속 주인공은 현실에선 냉정하기만 하다.  

 그래서 참 가슴이 아팠다. 함께 나눈 하나의 입맞춤에서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 순간을 후회하는 너와,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나. 이런 건 나약하기만한 차준호가 견디기엔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준호는 차창에 얼굴을 기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 

 


"은상아!" 


 등 뒤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은상은 2층을 향하려던 걸음을 멈추고 고모를 돌아봤다. 고모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운 채로 은상을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들어오는 구나. 여자친구랑 데이트는 잘 했어?"

"아…. 네, 그냥요."

"이거 받아."


 소녀같은 미소를 지으며 은상의 손에 핑크색의 앙증맞은 봉투를 쥐어주는 그녀를, 은상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돈이었다. 

 

"너 엄마한테 용돈 많이 받고 있는 거 알아. 그래도 우리 은상이, 하나뿐인 고모 조카잖아. 고모가 주고 싶어서 그래." 

"아뇨, 정말 괜찮은데…"

"여자친구 만날 때 돈 아끼지 말라구. 그러다 차인다, 너?" 


 은상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크러 뜨리며 웃음짓는 그 얼굴에도 은상은 웃어보일 수 없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아직 반장과는 그런 사이도 못 되었고, 그런 사이가 된다 한들 그 마음이 진심일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다 일일히 얘기할 수도 없어서, 은상은 그저 감사하단 말로 봉투를 받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은상아. 우리 준호 때문에 너도 힘들지? 고모도 다 알아. 준호 성격 유별난 것도 알고, 너한테 집착하는 것도 알고."

"……."

"우리도 언제까지고 네가 준호 옆에 있어줄 수 없을 거란 거 아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우리 준호 좀 잘 부탁할게."

 

 준호 졸업만 하면 내가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려고. 너도 느끼겠지만, 이 상태로 우리 준호 어른되면… 더 못 견딜거거든. 

 그렇게 덧붙이는 고모의 얼굴을 보며, 은상은 진심으로 서글퍼졌다. 준호를 잘 부탁한다는 말에도, 한국을 떠날 거라는 말에도, 어른이 되면 더 못 견딜거란 말에도, 은상은 무엇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준호의 얼굴과 내리는 빗속에서 슬프게 울고 있던 준호의 얼굴이 오버랩되며 가슴을 아프게 두드려 댈 뿐이었다. 


"늦었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

"고모."

"응?"

"저 준호 때문에 힘든 거 없어요."


 아마 준호가… 저 때문에 더 힘들 거예요.

 뒷말은 하지 못한 채 은상은 애써 웃어보였다. 고맙다며 은상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다독이는 고모를 뒤로 하고 돌아서며 은상은 또 한 번 죄책감을 마주한다. 모두 제 탓이었다. 준호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내내 설레임 따위를 느꼈던 자신이, 불안한 준호를 붙잡아주긴 커녕 입을 맞춘 자신이, 그래놓곤 냉정하게 그 예쁜 눈에서 눈물이나 흘리게 하는 자신이… 그저 다 이은상 하나가 나쁜 탓이라고…. 은상은 그렇게 저를 몰아세워야 했다. 










"……." 


 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에선 낯익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밝힌 방안에는 준호가 있었다. 또 은상의 침대를 차지하고서, 잔뜩 부어있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은상은 그런 준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이내 한 쪽 어깨에 지고 있던 가방을 조심스레 책상 위로 내리곤 의자에 몸을 걸터 앉았다. 

 깨워야 하는데, 깨우고 싶지 않았다. 또 다시 너를 마주하면 너에게 모진 마음을 먹고 냉정히 대해야 할 테니까. 왜 네 방을 놔두고 내 방에서 이러고 있냐고, 두 번 다신 이러지 말라고. 그렇게 네 안쓰런 눈물을 못 본 척 화를 내야 할테니까. 

 은상은 얕게 떨리는 손끝을 조심스레 준호를 향해 내밀었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드러난 준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미안해, 준호야…." 


 미안하단 말 조차도 이렇게 밖에 못해서, 그래서 참 미안하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이상한게 아니라고, 그렇게 대답 해 줄 수 없어서… 그래서 미안해. 

 가슴이 무너지듯 내려앉는 게 이런 기분인가보다. 준호는 들을 수 없을 말들을 조용히 속삭이며 은상은 자꾸만 울고 싶은 걸 참아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혀엉…." 


 그 순간 애처롭게 귓가로 닿아오는 짧은 말에 은상은 준호의 얼굴을 향해있던 손길을 다급히 거둬냈다. 감겨진 준호의 두 눈 사이로 투명한 이슬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나 미워하는 거, 아니지?" 

"……."

"나 미워하지 마…." 


 준호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지며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었다. 미워하지 말라고. 제발 저를 미워하지 말라고. 꿈에서조차 준호를 괴롭히고 있는 건가보다. 은상은 깊은 한숨과 함께 기어이 뺨 위로 떨어지고 마는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내가 널 왜 미워해, 준호야." 


 참 잔인한 시간들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은상은 진심으로 기도했다. 고모가 말했던 네가 어른이 되는 시간이… 부디 빨리 오기를. 그리고 지금 이 아픈 순간을 떠올리며 그저 허탈하게 웃고 지나칠 수 있기를. 

 너 하나만이라도… 부디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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