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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5

이은상 × 차준호



 은상과 반장의 다정한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우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에도 얼굴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만큼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는지는 준호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화가 나는데, 당장에라도 이은상에게 달려가 얘가 뭔데 너랑 같이 우산을 쓰고 있냐고 따지듯 묻고 싶은데, 근데 그냥 눈물만 나왔다. 생각해보면 늘 감정 표현은 이런 식이었다. 이성보단 감정이 앞섰고, 말보단 늘 눈물이 먼저였다. 그래서 오해가 쉬웠다. 오해라고 믿고 싶으면서도, 꼬일 대로 꼬여 있는 마음은 늘 최악의 경우만 생각했다. 

 그래서 준호는 생각했다. 둘이 저도 모르게 사귀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반장은 준호가 보아도 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공부도 제법 잘했다. 은상과는 굳이 재어보지 않더라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 최악이라는 거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끓어오는 이 분노와 이 배신감은 다 무엇인지…. 오늘 오전 내내 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인가 싶었다. 잠을 잘 못자 피곤하다면서도 기어이 늦은 시간까지 야자를 받은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인가 싶었다. 

 이은상, 나쁜 새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점점 멀어지는 은상의 뒷모습을 보며, 준호는 차라리 은상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백색왜성 5

w. lovesome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들고 있던 우산의 무게 마저도 감당이 안 돼서 그냥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만 있었다. 으슬으슬 추위가 온몸을 감싸오면서도 이마 위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왠지 제대로 크게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딱히 무섭진 않았다. 이걸로 이은상에게 복수 하나는 제대로 할 수 있을 지도 몰랐으니까. 


"차준호!!"  


 그리고 그 때, 귓가로 와닿는 커다란 목소리에 준호는 내내 땅을 향해 있던 얼굴을 들어올렸다. 비에 가려져 표정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희미한 빛을 내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그 얼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를 향해 점점 가까워져 오는 은상을 보며 준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학교 근처에 있는 놀이터였다. 그렇게 은상과 반장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발길이 닿는 대로 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준호야. 너 진짜…."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은상은 준호를 품에 안았다. 비에 쫄딱 젖은 몸이 또 다른 젖은 몸을 안았다. 수많은 말들이 뒤엉켜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네가 왜 이 비를 맞고 있는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지 하는 모든 말들을 겨우 삼켜내곤 그저 안도할 뿐이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제 품 안에 자리하고 있는 준호의 존재에 대해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어…. 아무일 없었어? 준호야, 형 봐봐."


 다정하게 눈을 맞추며 질문을 쏟아내는 은상을 보며 준호는 조금 짜증이 났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모든 원인인 주제에 저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준호는 은상의 손을 밀어냈다.


"형 같은 소리하지마." 

"준호야."

"네가 왜 내 형이야. 네가 뭔데."

"그런 말이 어딨어. 우린… 사촌이잖아."


 애처롭게 귓가에 닿아오는 한 마디에 뱉어내는 숨소리 사이로 비웃음이 섞여 들어갔다. 흔들리는 은상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준호는 생각했다. 이은상을 향한 차준호의 집착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이 지독한 감정의 이유는, 겨우 그런 게 아니라고. 


"사촌?"

"……."

"병신. 넌 그게 좋냐?"  


 차갑게 뱉어낸 말들에 은상의 얼굴은 참 슬퍼졌다. 은상과 반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호의 표정처럼. 


"난 네가 다른 누구랑 같이 있는 거 보기만 해도 속이 뒤틀려. 네 일분 일초는 다 나랑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

"이것도 다 내가 니 사촌 동생이라서 그런거야?"

"……."

"대답해 봐. 내가 정말… 너한테 그저 동생인건지." 


 대답을 재촉하는 준호를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차준호는 이은상에게 그저 동생이라고… 아니, 어쩌면 사실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이성과 감정을 오가는 흔들리는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마는 안쓰런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난 아냐. 나한테 넌 아냐. 나한테 넌 그냥…"

"……."

"그냥 형이 아니라고…."


 은상은 떨리는 손을 준호를 향해 내밀었다. 하얗게 질려있는 한쪽 뺨을 지나쳐 간 손이 이내 준호의 목 안쪽을 감쌌다. 그 손에 잔뜩 힘이 실리는 것을 느끼며, 준호는 눈을 감아버렸다. 


"차준호…."


  이은상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차준호를 잡아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더 강하게 쥐고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늘 그렇게 옆에 있어왔다. 그래, 그랬는데…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아니라고, 다 네 착각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나 아마 후회할 거야."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왜 흔들리는 건 너 혼자만이 아닌 걸까. 왜 더이상 너를 잡아줄 자신이 없는 걸까. 이미 중심을 잃은 이 마음은… 


"넌 날 원망할거고." 


 왜 너를 더이상 밀어내지 못하는 걸까. 



"우리한테 허락된 건 그게 전부야, 준호야."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고. 후회도, 원망도 안 할거라고. 하지만 준호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선 은상의 입술이 준호의 입술을 집어 삼키듯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잠시의 시간을 흘려 보내던 준호는 이내 두 팔로 은상의 목을 감싸 안았다. 서로의 혀가 애타게도 서로를 찾는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 엉켜들어가는 그것을 느끼며, 은상과 준호는 둘 다 눈을 감았다.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너무도 손 쉽게 허물어졌다. 아닐 거라고, 그저 7년 간의 공백이 주는 낯선 감정일 뿐이라고, 애써 감추듯 숨겨낸 마음이 내리는 빗줄기들에 이렇듯 씻겨 내려가고 그 정체를 드러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아 있는 시간들 속에서 은상은 너무도 분명히 깨닫고 말았다. 나에게도 너는, 그냥 차준호가 아니란 것을. 안아주고 싶고, 만지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던 모든 시간들. 그 속에 존재하던 이은상은 단지 너의 형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 하아…."

 

 오랜 시간 이어진 입맞춤 후, 거친 숨소리가 서로의 입술 사이를 채워왔다. 서로의 시선 끝에 존재하는 건 역시 서로가 전부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두 사람 중 누구도 이 입맞춤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사촌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던 둘이기에 더더욱. 


"미안…."

 

 제 어깨를 꽉 쥐고 있는 은상의 두 손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호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하게 떨리는 그 눈을 보며 준호는 따지듯 묻고 싶어졌다. 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면 안 되는지. 왜 우리는 입맞춤 하나에도 이토록 많은 것을 두려워 해야 하는지. 


"내가 너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야?"

"……."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야?" 

"준호야." 

"난 후회 안 해." 


 흔들리길 바랐다. 곧고 곧은 나무처럼 서 있는 은상이 휘몰아치는 폭풍의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흔들려 주기를. 늘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 주던 네가, 뒤돌아 이 시간에서 도망치지 않게… 이번엔 내가, 너를, ……


"차준호!!!" 


 멀리서 어렴풋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은상과 준호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준호의 아빠이자 은상의 고모부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제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은상의 손이 서둘러 떠나는 것을 느끼며, 준호는 눈을 감았다. 꿈을 깨고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부디 그 현실 속에서도 은상이 여전히 흔들려 주기를. 준호는 그렇게 기도하며 달려오는 아빠를 마주했다. 


 


** 




 집에는 반 실신 상태인 준호의 엄마와 경찰들이 있었다. CCTV에 비춰진 준호는 스스로 현관을 나서고, 정원을 지나 택시에 올라탔다. 덕분에 실종보단 단순 가출에 무게가 실렸고, 준호의 귀가와 함께 다행히도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고모부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온 준호를, 그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다. 고모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준호를 품에 안았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비는 왜 이렇게 맞았는지, 쏟아내는 모든 말들은 화도, 질책도 아닌 걱정이 전부였다. 그런 고모의 어깨를 고모부는 위로하듯 토닥이고 있었다. 은상은 세 사람의 뒤에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러왔다. 

 은상은 준호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고 있는 그들을 등지고 2층 계단을 올랐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무거운 몸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키스를 했다. 사랑하는 내 동생과. 준호를 그렇게나 아끼고 사랑하는 고모와 고모부를 두고, 동생에게 입을 맞췄다. 

 

"하아…." 


 깊은 한숨이 허공을 가르고 터져나왔다. 도망치고 싶단 생각만이 간절했다. 꿈이라면 한 시라도 빨리 깨기를…. 이 지독한 현실이 부디 현실이 아니었기를…. 은상은 그렇게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감긴 두 눈으로 어둠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 자리잡은 준호를 본다. 

 내가 너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야?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야?

 대답을 재촉하는 물음이 메아리되어 몇 번이고 아프게 심장을 치고 달아난다. 



"흐… 흐흐흑…"


 후회하지 않는다는 너의 말에도 난 후회가 된다.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고… 그렇게 대답하지 못한 순간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후회라는 두 글자만큼 잔인한 단어가 있을까. 그 안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잔인한 현실만이 있을 뿐인데….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애써 감춰내며 은상은 한참이나 울어야 했다. 액자 속에 참 순수하게도 웃고 있는 어린 날의 은상과 준호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두번 다신, 우리가 서로를 마주하고 저렇게 환하게 웃어보일 순 없을 거라고. 



  



 

-

어떻게 써도 부족한 것 같아서 ..... 그냥 올려요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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