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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4

이은상 × 차준호



 짙은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새벽녘. 한 두 방울씩 창가로 떨어지던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요란스레 울려대는 천둥소리에 준호는 잠결에도 몸을 움찔하며 은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빗소리와 함께 뜬 눈으로 깊은 새벽을 보내고 있던 은상은 제 허리를 감싸오는 준호를 밀어내지도 못한 채 눈만 껌뻑여야 했다. 다 큰 사내 녀석 둘이 자기엔 침대가 좀 좁긴 했는지, 너무도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준호의 존재가 평소와 달리 유난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은상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곤 제 옆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는 준호를 향해 조심스레 몸을 돌려 누웠다. 

 참 곤히도 잔다. 코 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하얀 얼굴로 향해 있는 은상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갈색빛 머리카락부터 감긴 눈꺼풀 사이로 길게 뻗은 속눈썹, 오똑하게 자리잡은 콧날 아래로 고른 숨결을 뱉어내는 붉은 입술까지. 시야에 가득 차 오는 그 얼굴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봐오던 얼굴인데도 지금 이 순간은 뭔가 달라보였다. 그래서였나 보다. 그 얼굴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던 건. 

예쁘네. 우리 준호. 

 저도 모르게 그렇게 속삭이며 준호의 얼굴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뺨에 와닿는 손길을 느낀건지, 움찔하는 준호를 보며 스스로가 더 놀라 서둘러 다시 그 손을 떼어냈다. 두 뺨 위로 뜨겁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은상은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조금 위험한 것도 같다고.  







백색왜성 4

w. lovesome







"야, 이은상. 오늘 왜 그래?"

"내가 뭘?"

"내가 바보야? 너 지금 존나 이상해."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반 아이들 모두가 엄청난 속도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둘만 남겨진 교실에서, 준호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은상을 붙잡았다. 아무리 눈치없는 차준호래도 모를 리가 없었다. 오전 내내 의식적으로 저를 피하고 있는 은상이란 것을.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엄마 차를 타고 등교를 하는 길에도, 심지어 한 교실에서 서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모든 순간 조차도 은상은 준호의 사소한 시선에도 얼굴을 굳히며 준호를 외면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

"잠을 잘 못잤거든. 앞으로는 같이 못 자겠더라. 침대도 좁고, 덥기도 하고." 


 은상은 여전히 준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을 이어갔다. 지난 새벽 내내 느껴야 했던 낯선 감정이 자꾸만 저를 찾아와 평소처럼 준호를 바라보는 걸 힘들게 만들었다. 제 곁에서 세상 편한 얼굴로 잠들어있던 준호의 옆에서, 왜 저는 그렇게 불편한 밤을 보내야 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복잡한 감정이 오전 내내 이어진 탓에 감히 준호를 바라보지도, 말을 걸지도 못했다. 준호가 이렇게 화를 내고 마리란 걸 예상했으면서도. 

 은상의 말에 준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은상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준호의 눈가에 어느새 투명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으니까.  


"미안해. 내가 피곤해서 좀 예민했나봐." 

"피곤해도 수업은 잘 들었잖아."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저한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었다니. 그건 더 충격적이었다. 덕분에 오전 내내 느껴야 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지 눈가로 차오른 눈물이 소리없이 뺨을 타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은상은 결국 얕은 한숨을 내쉬곤 준호를 향해 손을 뻗어야 했다. 


"내가 잘못했어. 안 그럴게. 응?" 

"…."

"기분 풀어. 너 울린 거 알면 나 고모한테 혼나겠다."

 

 다정히 눈을 맞추며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에 준호는 애써 눈물을 참아내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두 번만 피곤했다간 아주 얼굴도 쌩까겠다고 비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안색이 별로 좋아보이질 않는 은상을 보니, 아마 정말 피곤하긴 한 것 같아서. 

 

"먼저 급식 먹으러 가 있어. 곧 따라갈게."

"넌?" 

"잠깐 옥상 들렸다 갈게."

"옥상? 옥상은 왜?"

"이거. 아직 다 못 끊었거든." 


 준호는 담배를 꺼내 보이는 은상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섰다. 먼저 교실을 나서는 준호의 뒷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고서야 은상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옥상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은상은 입에 문 담배 끝으로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니코틴에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한 집에 사는 이상 준호는 종종 같이 자자며 방문을 열고 들어설 게 분명했다.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조금 전처럼 준호의 눈물 하나면 은상은 더이상 어쩌지 못할 것도 뻔했다. 이은상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게, 그 눈물이었으니까. 

 뿌옇게 뱉어낸 연기가 잠시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동안 은상은 결국 모든 게 제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촌 동생과 함께 자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혼자 이렇게 심각한건지. 어차피 다 익숙해질 터였다. 귓가에 닿는 숨소리도, 몸을 감싸오는 따뜻한 체온도.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내 동생의 것이라 여기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 테니까. 

 




**




 정규 수업이 끝나자마자 준호는 픽업하러 온 엄마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저녁에 바이올린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덕분에 은상은 홀로 남아 늦은 시각까지 야자를 했다. 

[ 언제 들어올거야? ] 

 준호에게서 도착한 톡에 12시. 라는 답장을 남긴게 은상이 야자 시간동안 한 일탈의 전부였다. 미국에서도 공부는 곧잘 했지만 한국까지 와서는 더 욕심이 났다. 혼자서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떳떳하고 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은상의 존재에 별 관심이 없는 엄마가 보란듯이.  

 

"은상아. 안 가?" 


 열 한시가 넘어 가도록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평소보다 빨리 자리를 비워갔고, 어느새 네모 반듯한 교실 속엔 은상과 반장만 남아있었다. 물론 그 반장이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 은상은 그 마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 응. 이제 가야지." 

  

 은상은 시계를 확인하곤 책상 위에 펼쳐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한 시 삼십분. 지금 출발하면 열두시 쯤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혹시 준호가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더 늦어지는 건 곤란했다. 


"같이 나갈까?"

 

 은상이 가방을 챙기는 동안 어느새 옆에 다가온 반장이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전학 온 지 일주일이 되도록 형식적인 인사 외엔 딱히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을 나눠본 적 없던 사이였다. 긴 생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그녀를 잠시 마주하는 순간, 은상은 왠지 모르게 오늘 낮에 눈물고인 눈으로 저를 원망스레 바라보던 준호가 떠올랐다. 


"사실 내가 우산을 엄마 차에 두고 내렸거든. 미안한데 정문까지만 우산 좀 같이 쓰면 안 될까?" 


 난감한 표정으로 부탁을 해오는 그녀를 보며 왜 그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은상도 모를 일이었다. 딱히 안된다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은상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환하게 미소짓는 반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상은 또 한 번 준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번엔 밤새 낯선 기분으로 바라봐야 했던 잠든 얼굴을.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은상은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얼른 집에 가서 준호를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자꾸만 눈가에 아른 거리는 그 얼굴에,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으니까. 




** 




"으씨. 비 겁나 오네…." 


 엄마 아빠 몰래 집을 빠져나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현관문을 열고 닫는 게 조금 수월하긴 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콜택시에 몸을 싣고서, 준호는 학교로 향했다. 분명 은상이 이 비에 홀로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올 게 뻔했으니까. 데리러 오란 한 마디면 엄마가 직접 픽업을 갈 수도 있겠지만 이은상 성격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준호가 직접 나왔다. 깜짝 놀랄 은상의 얼굴을 떠올리니 어느새 입가로는 미소가 번져갔다.   

 열한시 삼십분. 예상한 시각에 맞춰 도착한 게 만족스러웠다. 하나 둘씩 꺼져가는 교실의 불빛들을 정문에 서서 지켜보면서 준호는 빨리 은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멀리서부터 가까워져 오는 익숙한 형체에 큰 소리로 이름을 외치려던 순간, 준호의 시야로 익숙치 않은 또 다른 한 명의 실루엣이 더 들어섰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비춰지는 빨간 우산 속 주인공은 분명 은상이었다. 야자 잘 받고 오라며 그 우산을 쥐어주고 학교를 나선게 바로 준호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우산 밖으로 어깨 한 쪽을 다 적시고 있는 건 준호가 기다리던 은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옆으로 환하게 미소를 짓고서 은상을 바라보고 있는 반장의 존재는 더더욱. 


"…." 


 준호는 잠시 미동도 없이 멈춰서서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둘의 웃음 소리가 쏟아지는 비를 뚫고 유난히 크게 귓가로 와 닿는 것 같았다. 화가 난다. 그 어떤 감정보다 그게 제일 솔직했다. 그냥 화가 나. 그런데 그 감정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준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또 한 번 눈가로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느끼는 수밖에. 그래서 준호는 아랫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돌아서야 했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두 사람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 


 


 "준호야." 


 똑똑, 노크를 아무리 해 봐도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잠들었나…. 이미 늦은 시간이니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한 은상이 제 방으로 몸을 돌려 세웠다. 그러나 문득 집으로 오는 길 내내 환영처럼 따라붙던 준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물 젖은 눈으로 원망스레 은상을 바라보던 그 얼굴말이다. 결국 은상은 다시 준호의 방 문고리로 손을 올려야 했다. 아무래도 자는 모습이라도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달칵. 가볍게 문이 열린 방 안은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차 있었다.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차마 기다리지 못하고, 은상은 방의 조명부터 켰다. 


"차준호?"


 침대 위로 향한 두 눈동자는 기대했던 준호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채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환하게 드러난 방 어디에도 준호는 없었다. 대답없는 이름을 몇 번이고 더 불러보다 은상은 서둘러 제 방을 향했다. 그러나 없었다. 은상의 방에도. 차준호가. 은상은 그제서야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느껴야 했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실체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1층과 2층 모두를 뒤져 보았으나 준호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긴 연결음 끝엔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 메시지로 연결된다는 안내음만이 반복됐다. 결국 집안은 난리가 났다. 굵은 빗줄기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고,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고모는 거의 기절 직전의 상태로 112 버튼을 눌러야 했다. 


"고모, 제가 나가서 찾아볼게요."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은상은 핸드폰 하나만 챙겨 든 채로 집을 나섰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달리며 은상은 또 한번 밤새 바라보았던 준호의 잠든 얼굴을 떠올렸다. 저도 모르게 그 얼굴 위로 잠시 닿았던 떨리는 손끝도, 시선을 뗄 수 없던 붉은 입술도. 그리고… 

 그 모든 순간 내내 미친듯이 뛰어대던, 애써 모른척 하고 싶었던 심장소리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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