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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3

이은상 × 차준호

*퐄챠가 사촌지간으로 등장합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결국 조퇴를 했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준호를 데리러 온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원부터 향해야 했다. 아이들의 관심 속에서 웃고 있던 은상으로 인해 시작된 통증은 보건실에서 잠을 자는 내내 제 곁을 지키던 은상의 간호로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이은상으로 인해 예민해진 탓에 시작된 통증이었다. 그 원인과 치료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병원따윈 굳이 안 가도 됐지만, 엄마는 준호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유난스러운 사람이었다.


[ 좀 괜찮아? ] 

 핸드폰 액정을 채운 은상에게서 온 톡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준호가 없는 학교에서 홀로 또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웃고 있을 그 얼굴을 떠올리니 잊고 있던 통증이 다시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괜히 심통난 마음에 준호는 짧은 답장을 했다. 

[ 안 괜찮아. ] 


 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높게 솟아오른 빌딩 사이를 달리는 동안 준호는 학교에서 저를 업고 보건실로 달리던 은상을 떠올렸다. 이마에 흥건한 땀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던 모습도 떠올렸다. 어릴때나 지금이나 은상은 준호의 아픈 모습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서 준호는 생각했다. 준호를 향한 은상의 친절과 관심은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닐까, 하고. 그렇지 않고서야 제 나약한 몸과 삐뚤어진 마음이 설명 되질 않았다. 이렇게 못난 차준호로 태어나게 했으니,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한 게 당연했다. 

 그래서 준호는 믿었다. 불온전한 차준호를 채워 줄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이은상이라고. 

 





백색왜성 3 

w. lovesome







"여보. 준호가 오늘 위경련을 일으켰대."

"아빠. 나 이제 멀쩡해." 


 담당의는 아빠였다. 준호의 아빠는 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였고, 덕분에 준호는 필요 이상으로 병원을 들락 거려야 했다. 신경외과와 전혀 관련이 없는 상황에도 늘 신경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당신 유난 좀 떨지마. 준호가 괜찮다잖아."


 엄마는 똑같은 눈매를 가진 두 남자의 못마땅한 시선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준호를 향한 걱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애써 모른 척 하고, 아빠는 준호의 그것과 꼭 닮은 미소를 지으며 서랍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들을 향해 내밀어 보였다. 액자였다. 아홉살 차준호와 열살 이은상이 퉁퉁 부은 눈으로 함께 웃고 있는.


"어제 책상 정리하다 발견했다. 은상이가 없었다면 네가 슬퍼할까봐 못 줬을 텐데… 이젠 은상이도 돌아왔으니까."


 사진 속 준호는 병원복 차림이었다.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심장 수술을 받던 날이었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걱정하는 은상의 앞에서 일부러 더 엉엉 울었던 날이기도 했다. 준호는 사진 속 두 어린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귀엽네."

 

 액자 속 사진을 손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손끝에 닿아오는 유리의 차가운 감촉에도 괜히 마음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준호의 병실을 놀러 왔던 열 살짜리 꼬마 이은상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주말에 은상이랑 같이 외식할까?" 


 그런 준호를 눈치 챘는지 아빠가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을 올리며 묻는다. 응. 은상이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자. 대답하는 준호를 보며 엄마 아빠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준호 못지 않게 그들도 은상의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은상이 미국으로 떠나 있던 7년 동안 준호는 학교 생활 내내 그럴듯한 친구 한 명 없이 지냈다. 부족함 없이 감싸고만 키워온 탓인지 준호는 남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못 되었고, 게다가 몸도 마음도 또래 사내녀석 답지 못하게 약하기만 했다. 그래서 은상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을 땐 정말 구원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은상이라면 준호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이자 형제가 되어줄 테니까. 

 그들이 준호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 아빠의 뒤를 이을 성적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성격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아들이 건강히 옆에 있어 주는 것. 그것만이 준호의 부모가 바라는 전부였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준호의 방과 은상의 방이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교복을 갈아 입을 생각도 않은 채 은상의 방문부터 열어 제꼈다. 주인을 닮은 방은 깔끔 그 자체였다. 침대 위의 이불 마저도 주름 하나 없이 정돈된 모습에 준호의 고운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도대체가 열아홉 다운 구석이 없었다, 이은상은. 제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던 엄마 아빠의 말을 뭘로 들은 건지, 오늘 아침까지 사람이 머문 공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냉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준호는 책상 위로 다가가 병원에서부터 손에 쥐고 온 액자를 한 쪽 구석으로 올렸다. 이 사진을 은상이 눈으로 보고, 마음 깊이 기억했으면 싶었다. 차준호는 이은상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각인시키기엔 이만큼 좋은 장면도 없을 테니까. 


[ 준호야. 지금은 몸 좀 어때? ]

 주머니에 찔러 넣은 핸드폰이 얕은 진동을 울리더니 은상의 목소리를 대신해왔다. 걱정이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준호는 액정을 향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은상의 침대 위로 풀썩 몸을 눕혔다. 

[ 이제 좀 괜찮아. ]

 짧은 답을 하자마자 핸드폰은 다시 진동을 울려왔다. 수업 시간일텐데…. 저 때문에 집중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기분 좋게. 

[ 다행이다. 수업만 끝내고 바로 갈게. 오늘 내방에서 같이 잘까? ] 

 어제는 그렇게 매정하게 내치더니, 아픈 모습 한 번에 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준호는 가끔씩 아픈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며 은상의 베개 위로 얼굴을 묻었다. 깊게 들이킨 호흡에 은상의 향기가 몸 속 깊숙히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심장이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가 싫지는 않아서, 준호는 그대로 은상의 침대 위에서 한참이고 머물러야 했다.




** 




"이건 영어 시간에 필기한 거고, 또 이건 문학 시간에 필기한 거." 

"나 이런 거 필요 없어."

"필요가 왜 없어. 여기서 시험 낸다는데." 


 저를 걱정하느라 수업을 못듣고 있나, 했더니 잘만 듣고 있었나보다. 교과서 가득 빼곡히 필기한 내용들을 준호의 교과서로 옮겨 적는 은상의 손이 분주했다. 은상의 침대 위로 올라앉아 책상 앞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침대 주인의 뒷통수만 한 시간 째 노려보는 중이었다. 범생이 새끼. 준호는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은상은 그러던가 말던가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근데 이거 액자는 네가 올려둔 거야?" 

"응. 아빠가 찾아줬어. 귀엽지."

"응. 차준호 이때 진짜 귀여웠지." 


 그제서야 은상은 분주히 필기를 써내려가던 손을 멈추곤 액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진 속 귀여운 두 꼬마의 모습에 입가로는 절로 미소가 번져갔다. 이때 차준호 진짜 울보였는데…. 중얼거리는 은상을, 준호는 턱을 괴고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이날 엄청 많이 울었었잖아." 


 네가 너무 울어서 난 네가 죽을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어. 입술 새로 짧은 웃음소릴 내는 은상의 말에 준호는 나도 내가 죽는 줄 알았어,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상도 잊지 않은 듯 했다. 그 날의 우리를. 그래서 준호는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 날의 우리도. 오늘의 우리도. 


"나 졸려, 은상아." 

"먼저 잘래?" 


 그제서야 시선을 준호에게로 돌리며 은상이 다정히도 물어왔다. 준호는 조금 심술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같이 잘래. 퉁명스레 뱉어내는 준호의 말에 은상은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자, 그럼."

 

 준호는 넓은 침대 한 쪽 구석으로 자릴 잡고 누웠다. 그리고 빈 자리를 팡팡 내리치며 얼른 올라오라는 말을 대신했다. 그런 준호를 내려다보는 은상은 잠시 무언가를 망설이는듯 하더니 이내 방을 밝히던 조명을 끄고 준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너랑 자는 거 진짜 오랜만이야." 


 눈을 감고 은상을 향해 몸을 돌려 누우며 준호가 중얼거렸다. 우리 어릴 때 거의 매일 같이 잤잖아. 덧붙이는 준호의 말에도 은상은 천장을 향해 일 자로 누워만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은상. 자?"

"…아니."

"근데 왜 아무 말도 없어?"

"그냥…. 졸려서 그래."


 은상은 핑계처럼 얼버무리곤 눈을 감았다. 준호의 말대로 어렸을 땐 거의 매일 반복되던 일상 중 하나였다. 준호와 밤 늦게까지 놀다가 함께 잠드는 것은. 그러나 7년만에 다시 맞이한 그 상황은 그때처럼 아무렇지 않지가 않았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 데도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상에게 준호는 변함없이 지켜 줘야 할 동생일 뿐이었다. 그러나 유난히 가까이에서 풍겨오는 준호의 달큰한 바디워시 향이 예민하게 코를 파고들었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준호의 숨소리도 마찬가지였다. 귓가로 닿아오는 간지러운 호흡에 은상은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무튼 이은상 진짜 재미없어…."


 아무런 말도, 어떤 움직임도 없는 은상의 두 눈이 곱게 감겨진 것을 확인한 준호가 불만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은상이 금세 잠들어 버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은상 진짜 속편한 새끼…. 그러나 준호의 입술 새로 중얼거리는 말들은 모두 은상의 귀로 전달되고 있었다. 은상은 애써 감은 눈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하루가 준호에게도 꽤 고되었는지, 준호는 몇 마디 말을 중얼거리다 이내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내 은상은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몸을 굳히고 있어야 했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준호와 몸이 닿게 될까 걱정되었던 탓이다. 

 그래서 은상은 두번 다시 준호와 함께 잠을 자는 일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준호의 고른 숨소리와 뺨을 간지럽히며 닿아오는 부드러운 머리카락, 간간히 이어지는 뒤척임 같은 것들에 은상은 그 밤, 잠들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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