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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2

이은상 × 차준호

*퐄챠가 사촌지간으로 등장합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어? 뭐야. 이은상, 너 담배도 피워?"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은상과 준호 모두 당황스레 눈을 키웠다. 미처 불을 붙이지 못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은상이 서둘러 담배를 커다란 손바닥 안으로 감춰 냈지만 이미 준호는 전부 본 모양이었다. 


"너 노크도 없이 남의 방을…."

 

 얕은 한숨을 내쉬는 은상을 보면서도 준호는 허락없이 은상의 방 안으로 몸을 들였다. 딱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꽉 닫아 놓곤 멀뚱히 서있는 은상의 곁으로 한 걸음에 다가섰다. 그리곤 은상의 손을 턱 하고 잡더니 그 안에 감춰진 담배 한 대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꺼내 든다. 


"이리 줘. 손에 냄새 베." 

"울 엄마 아빠 알면 완전 깜놀하겠다. 너 완전 모범생인 줄만 아시는데…."

"끊을 거야. 그러니까 괜히 얘기 드리지 마."

"내가 초딩이냐. 고자질을 하게. 겨우 담배 가지고." 


 준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은상에게서 뺏은 담배를 은상의 셔츠에 달린 주머니 속에 꽂아 넣는다. 그리곤 방 한쪽에 자리잡은 은상의 침대 위로 걸터 앉았다. 시선은 은상의 방 곳곳을 훑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진 준호네 집에서 함께 살 예정이었고, 덕분에 창고처럼 텅 비어있던 방이 주인을 찾아 제법 깔끔하게 갖춰져 있었다. 책상 위로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 펼쳐진 문제집과 펜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아무튼 범생이 맞다니까. 


"왜 안자고 있어?" 


 벌써 열 두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은상이 의자에 몸을 앉히며 묻자 준호는 이번엔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심심해서 잠이 안 와." 

"내 방에 오면 뭐가 해결되는데?" 

"이은상이 차준호랑 놀아 주겠지."

"……."

"아님 재워주던가." 


 제 베개 위로 얼굴을 파묻고 있는 준호를 보며 은상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느껴야 했다.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자라온 사이였지만 7년이란 공백이 무색하게 준호는 은상의 모든 것에 침범하듯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은상은 문득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 오늘 여기서 자도 되지?" 


 이게 과연 평범한 열여덟 사내 녀석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이게 평범한 사촌 지간에 있을 수 있는 대화인지 하는 것들이. 









백색왜성 2

w. lovesome 







"차준호. 너 은상이한테 형이라고 안 할래?" 


 둥그렇게 자리잡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고모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준호에게 말했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국물 속에 밥 한 공기를 꾹꾹 눌러 담는데 집중하던 준호가 인상을 구기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형은 무슨. 1년도 차이 안나는데. 은상은 그 모습을 보며 차준호가 삐져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젯 밤, 잠은 니 방 가서 자라며 방밖으로 기어이 준호를 쫓아내고 말았으니까. 


"괜찮아요, 전. 어차피 학년도 같은 데요, 뭘."

"에휴. 은상아, 고모가 여전히 너보기 창피하다. 우리 준호 달라진 거 하나도 없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는 고모의 모습에 은상은 아니라며 웃어보였다. 국에 만 밥을 열심히 퍼 먹고 있는 준호에게로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갔다. 


"다 나때문이지, 뭐. 어릴 적부터 애가 잘 아프다보니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 

"저 성질머리로 친구는 잘 사귀나 늘 걱정이었는데… 은상이 너 있어서 이젠 걱정 없겠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고모의 모습을 보며 은상은 대답없이 숟가락 가득 떠 올린 밥을 입으로 옮겼다. 준호는 여전히 심통난 표정으로 반찬도 없이 국에 만 밥을 퍼먹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러다 체하겠다 싶었다. 뜨겁지도 않은지 입 속에 가득한 밥알갱이들을 다 삼키지도 않았는데 또 떠 먹는다. 그런 준호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상이 젓가락 사이로 집어든 계란 말이를 준호의 숟가락 위로 올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국그릇에 코를 박을 듯 숙이고만 있던 심통난 얼굴이 은상을 향해 들어 올려졌다. 


"반찬도 먹어."


 왠지 미안해지는 마음에 은상이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준호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만 보다 이내 숟가락에 올라 앉은 계란 말이를 입 속으로 가져갔다. 


"아무틍 이응상 존나 짜증나." 


 입안 가득 계란 말이를 씹으며 뭉개지는 발음으로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은상은 알 수 있었다. 준호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는 걸. 







**




 학교에 들어선 순간부터 준호의 기분은 또 밑바닥에 있었다. 차라리 자리를 옮기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전학을 온 지 일주일이 흐르도록 은상은 여전히 모두의 관심 한 가운데에 있었다. 은상의 주위를 둘러 싸고있는 많은 아이들은 했던 질문을 몇 번씩이나 번갈아 반복하며 은상을 괴롭혔다. 아니, 준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여전히 예쁘게도 미소를 짓고 있는 은상을 보아하니 괴로운 건 차준호 하나뿐인 것 같았다. 잘생긴 외모로 온갖 여자 아이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던 이은상은 체육 시간에 보여준 화려한 농구 실력으로 이젠 남자 아이들의 관심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은상아. 그럼 너 미국인 여자친구도 사귀어 봤어?"


 앞자리에 앉은 녀석의 질문에 은상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내내 인상을 구긴채 못마땅해 있던 준호도 귓가로 닿아오는 그 질문에는 왠지 호기심이 일었다. 준호는 은상에게 미국에서의 생활을 묻지 못했다. 은상이 적응을 잘 못했고, 그래서 힘들었고, 그래서 대학 만큼은 한국에서 다니고 싶어 했음을 엄마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궁금하긴 했다. 7년 이란 시간 동안 차준호가 없는 이은상의 삶이 어땠는지 말이다. 준호는 괜히 흠흠 헛기침을 하며 온 신경을 귀로 집중했다. 


"사귀어 보기야 했지…."


 은상의 멎쩍은 대답에 주변에서 오- 하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열여덟 새까만 사내 녀석들의 머릿속으로 발육이 남다른 서양의 금발 미녀 정도가 떠오르고 있을 테니 당연한 얘기였다. 몇 명이나 만나 봤는데? 이어지는 질문에 은상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세 명을 답했다. 다시 한 번 오- 하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부터 준호는 또 짜증이 났다. 적응을 잘 못하긴 뭘 잘 못해. 외롭긴 뭐가 외로워. 외로울 틈도 없었겠구만…. 엄마가 말하던 이은상의 미국 생활이 순 뻥이었던 것만 같아 준호는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준호는 애써 은상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곤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예뻤어?"

"사진 같은 거 없어?" 


 그러나 끈질기게 귓가로 따라붙는 호기심 섞인 녀석들의 질문에 준호는 속이 메스꺼워 지는 걸 느껴야 했다. 아침에 급하게 입으로 쑤셔 담은 음식들이 결국 탈이 난 것 같기도 했다. 한 쪽 손으로 아릿한 통증을 전해 오는 배를 부여잡고 고통이 가시길 기다려 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야, 이은상."

"어, 준호야."

"나 아퍼."

"응? 어디가?"


 아프다는 한 마디에 은상의 걱정 가득한 시선이 그제서야 준호를 향했다. 많이 아픈건지 준호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을 보며 은상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보건실 가보자. 걸을 수 있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준호의 모습에 은상은 망설임없이 그 앞으로 무릎을 굽히고선 등을 보였다. 업혀, 얼른. 은상의 단호한 목소리에 준호가 은상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갑작스레 이어지는 상황에 아이들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은상은 개의치 않고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한 쪽 뺨으로 전해지는 은상의 온기를 느끼며 준호는 그제서야 머리 끝까지 솟아올랐던 짜증이 눈녹듯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통증도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이렇게 또 이은상을 독차지 할 수 있었으니까. 

 




** 



 준호는 토를 두 번이나 해야했다. 위경련이었고, 자주 있는 일이라 했다. 보건 선생님은 준호가 뭐에 또 심기가 안 좋았나 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은 진단을 했다. 그러나 보건실 침대 위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준호를 내려다보며 은상은 모두 저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아이들 틈에 섞여 별 시덥지 않은 얘기들을 하느라 준호의 상태를 잘 돌보지 못한 것이 다 제 탓인것만 같았다. 땀으로 젖어 있는 갈색빛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파랗게 질려있는 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번의 유산 끝에 겨우 태어나게 된 준호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아들이었지만, 사소한 외부의 자극에도 크게 앓는 병약함은 모두가 준호를 더 애지중지하게 만들었다. 그건 은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니가 준호를 잘 돌봐줘야돼, 은상아. 넌 하나밖에 없는 형이잖아. 하나밖에 없는 네 동생이잖아. 친척들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은상은 그 말을 늘 따랐다. 준호가 아무리 제멋대로 굴고, 은상을 함부로 대해도 은상은 늘 웃었다. 그게 마음이 편했으니까. 준호가 아픈 모습, 준호가 우는 모습 같은 것들은 늘 은상의 마음을 꼭 그만큼 아프고, 울고 싶게 만들곤 했었으니까.


"혀엉…." 


 그 순간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준호의 목소리가 귓가로 와 닿았다. 은상은 준호의 얼굴로 좀 더 몸을 기울이며 응, 준호야. 형 여기있어. 귓가에 속삭였다. 


"어디 가지말고… 여기 계속 있어야 돼?"


 준호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속삭이듯 겨우 한 마디 말을 뱉고 있었다. 은상은 대답 대신 차갑게 식어있는 준호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이미 준호 덕분에 수업 하나를 빠진 상황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아픈 애를 혼자 두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은상이었지만, 사실은 정말 오랜만에 듣는 형이라는 그 말이 은상의 두 손, 두 발을 준호의 곁에 꽉 묶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늘 이은상, 은상아, 하며 친구 대하듯 하던 준호가 형이라고 하는 건 그만큼 준호에게 은상이 간절한 상황이란 의미였다. 무언가를 잃어 버렸을 때, 친구와 다퉜을 때, 선생님에게 혼이 날 때 같은 순간만 준호는 엉엉 울며 은상을 형이라 부르곤 했으니까.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은상은 준호가 형이라고 부를 때마다 두려워지곤 했다. 혹시 네가 길을 잃은 건 아닌지, 누구에게 얻어 맞은 건 아닌지, 그런 걱정들로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기분이었으니까. 


"진짜 오랜만에 듣네. 형이라고 하는 거." 


 은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준호를 덮고 있는 이불을 좀 더 끌어 올려 주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금세 다시 잠이 든 준호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평온해 보였다. 


"차준호, 아프지 좀 마." 


 형 진짜 놀랐잖아…. 중얼거리며 준호의 곁으로 상체를 굽히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준호가 멀쩡히 '야, 이은상!' 하고 불러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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