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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r 下

이은상 × 차준호







Liar 





 대학에 입학하고 그런 자리에 참석해 본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아니, 참석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알바를 하던 도중에 우연히 가게를 찾은 과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잡고 앉은 게 전부였으니까. 이미 거나하게 취한 녀석들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 채 방향을 잃고 휘청거리기 바빴고, 나는 그런 녀석들이 늘어놓는 시덥지 않은 얘기들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전부였다. 딱히 대화를 주고 받으며 지내는 친구도 없었으니 그 사이에서 내가 할 말이 있을 리도 없었다. 

 비록 우스운 노란 앞치마 차림에 계산대에 앉아 나를 못마땅히 바라보고 있는 사장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해 그 순간은 꽤 즐거웠었다. 개강파티라던가, 시험 뒷풀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사실 늘 동경해왔던, 그러나 내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었던 그런 대학 생활이었으니까. 


"몇 시까지 일해?"

 그렇게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여기저기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그때, 나를 향해 물어오는 낮은 목소리에 난 순간 내가 환청을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 저마다 풀린 눈빛으로 헤롱거리던 한 무리의 녀석들 틈에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던 너. 평소 모른 척 지나친 게 전부였지만 사실 나는 너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녀석들이 대부분인 캠퍼스에서 그렇게 화려한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녀석도, 아들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줄 수 있는 아버지를 가진 녀석도… 아마 네가 유일할 테니까. 


"안 들려? 몇 시까지 일하냐고. 너."

 그러나 그런 네가 나를 향해 처음으로 말을 걸어 왔을 때, 그리고 그 깊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 봤을 때, 사실 나는 잠시 숨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어.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네가 내게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너의 질문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그때 난 내게 몇 시까지 일을 하냐고 묻는 너의 앞에서…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떳떳할 수 없었어. 


"그건 알아서 뭐하게."

 나답지 않은 무신경한 말투를 뱉어내곤 사실 나 조차도 조금 당황했었다. 우리는 딱히 친해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친해질 이유도 없는 관계였다.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년. 그러한 것들은 너와 내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줄테지만 우리 사이에 그 이상의 관계가 가능하리라 생각치는 않았다. 

 노란 앞치마 차림의 나와, 한 눈에 봐도 값비싼 명품으로 보이는 것들로 너를 빛내고 있던 너. 처음부터 너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라고… 나는 이미 너의 존재를 아는 순간부터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니까. 

 그러나 그때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내 무심한 말투와 성의없는 대답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너는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더 물어 왔었지.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얼마나 받냐?"

 그리고 그 까만 눈동자도 한동안 내게서 거두지 않았었다. 그 눈길에 나는 참 이상하게도 심장이 요동치듯 불안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땐 미처 알지 못했어. 너와 나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리라고는. 




 하루하루 지루하게 이어지던 일상의 틀이 깨지기 시작한 건 네가 나를 찾아 술집을 찾기 시작하던 그때부터였다. 너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내가 일하는 시간에 맞춰 술집을 찾아 왔고,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온 너를 보면 왠지 모르게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껴야 했다. 너의 얼굴과 너의 이름, 그 외에도 너에 대해 아는 것들이 몇 가지나 더 있는, 우리는 분명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너를 아는 척 할 수도 없었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집요하게 나를 쫓아 움직이는 너의 시선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 마저도 모른 척하며 네가 주문한 것들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 돌아설 뿐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 고아원 출신이었고,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해 여지껏 홀로 살아온 게 전부였다. 이 세상 속에서 맺은 인연이라곤 그저 내 몸둥아리 하나가 전부인 그런 우울한 삶이 바로 나의 인생이었다. 그런 내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


"너 되게 할 일 없구나."


 홀로 나를 찾아 온 너를 보며 그렇게 말하고야 말았지. 나를 찾아온 이은상이라니…. 그런 낯선 상황은 꿈에서도 꿔 본 적 없었다. 그래서 어떤 표정과 말투로 널 맞아야 할지 도저히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겉으론 무신경한 척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혹시 네가 나에게 어떤 관심이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나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그래. 참 우습게도… 그런 기대를 했었지. 
 

"어차피 일 할 거면 좀 더 나은 데서 하지 그래. 분위기 좋은 와인바나, 아님…"

"……."

"호빠 나가도 잘 어울리겠는데, 너. 아줌마들이 좋아하게 생겼거든."


 물론 그런 기대는 이어지는 너의 말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지만. 네가 주문했던 술을 테이블 위로 올리던 손길을 멈추고, 난 꽤 매서워진 눈길로 너를 바라봤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 말이 기분 나빴던 게 아니었다. 너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던 내 스스로가 초라해 견딜 수 없었고, 그 원망을 고스란히 너에게 하고 싶었을 뿐. 

 그러나 그런 원망을 담은 내 눈빛을 넌 너무도 떳떳하게 마주하고 있었어. 그 눈빛이 잔인하게 내게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내게 그런 수치스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왜 자꾸 여기와서 알짱 거리는지 모르겠는데…"

"……."

"그만 꺼져줄래?"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날이 선 말들을 뱉어낼 수 있었던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오기였다. 그리고 너와의 관계를 여기에서 끊어내기 위한 발악이기도 했다. 굳이 너와 얽혀서 상처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냥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게 전부일 뿐인 그저그런 동기 관계가 속 편하다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망설임없이 너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던 순간 마주친 네 눈빛이 조금 슬퍼보였던 것은… 그저 내 착각이겠지. 







**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조금 위험한데… 백혈구 수치도 계속 올라가고. 약은 꾸준히 먹고 있는 거 맞죠?"

 

 살고 싶었다. 누구 하나 슬퍼하는 이 없을 죽음이 나 조차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몸은 하루하루 야위어 가고, 잠들기 전이면 이대로 영원히 눈뜨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랬다. 죽기는 싫었으니까. 때 맞춰 검사도 받고, 약도 사 먹어야 했으니까. 매일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며 학교 생활까지 하는 게 얼마나 큰 무리가 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그럴듯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제대로 취업이라도 할 수 있었고, 아무리 가진 거 없는 몸둥아리가 전부인 인생이래도… 나도 꿈이란 게 있었으니까.


"맘 같아서는 당장 입원하라고 하고 싶은데, 사정이 사정이니까…"

"……."

"절대 무리하지 말아요. 준호씨 지금 조금… 위험해요."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나를 기다리던 너를 마주했던 날. 그래, 그 날은 내가 그렇게나 비참하고 초라해진 날이었어. 담당 의사 앞에서 그런 소리까지 들어놓고도 결국 알바를 가야 했고, 정말로 죽음이란 그림자가 내 뒤를 쫓고 있는건 아닌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야 했던… 그런 날. 

 나라고 왜 삶의 즐거움을 모르고 싶겠어. 나라고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겠어. 나도 너처럼…


"차준호."

 부모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공부도 하고, 실컷 술도 마셔보고, 비싼 외제차도 몰아보고, 나도, 나도 너처럼…


"비켜."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정말 단 하루 라도.



"너네 집 존나 어렵다며. 찢어지게 가난하다며."

"……."

"나랑 한 번 잘래? 아마 그딴 술집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


  나는 너와 다른 세상에 사는 하찮은 인간이니까, 네가 그 잘난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너도 이해 못할 거야. 술 취한 몸으로 나를 막아선 너를 보면서… 나를 몸이나 파는 그런 싸구려 새끼로 생각하는, 겨우 그 정도의 너를 보면서… 참 우습게도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걸. 

 나를 쫓아 움직이던 너의 집요한 시선들. 혹시 나를 향한 따뜻한 관심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기대감을 갖게 했던 너의 시선이… 사실은 그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정도를 원했을 뿐이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얼마 줄건데."


  그런 너라도 간절했다.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기억해 줄 한 사람이. 내 죽음에 아주 조금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줄 한 사람이. 나도 결국 철저히 홀로 지낸 삶 속에 참 많이 지치고 외로웠었나 보다. 


 다급하게 나를 모텔로 이끄는 너의 손길을 말없이 따랐다. 술에 취한 탓인지 너는 모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 거칠게 내 옷가지들을 벗겨 내려갔고,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서 벌겨 벗겨진 채로 나를 만지는 손길에 몸을 떨었다. 내 어깨를 감싸 쥔 너의 손이 너무도 뜨거워서, 내 가슴 위로 닿아오는 너의 숨결이 너무도 따뜻해서, 나는 착각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나를 원할 만큼… 혹시 네가 나를 마음에 두고 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배려없는 너의 행위들은 내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만을 안겨 주었고, 그 모든 게 내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닫게 해주었지. 난생 처음 내 안에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살갗을 찢어 발기듯 커다란 아픔을 줄 뿐이었다. 눈가에 자꾸만 맺히는 눈물을 닦아낼 여력도 없이 그저 네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스스로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이런 고통은 너무도 당연한 거라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그저 거래를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이나 배려같은 것들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애써 참아 내었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비쩍 마른 내 다리를 보는 게 스스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워서,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돌리고 그 상황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너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너는 내 목 언저리에 이를 박곤 꽤 아프게 나를 깨물었다.



"하, 하지마."


 그제서야 난 다급한 손길로 네 다부진 가슴팍을 밀어내었다. 같은 남자임에도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뜨겁게 달아오른 살결의 느낌에 손이 데인 듯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참지 마, 씨발. 할 맛 안나."

 
 너는 여전히 너의 것을 내 안에 밀어넣은 채로 그렇게 읊조렸다. 난 너에게 약자일 수 밖에 없었고, 넌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강자로 군림하고 싶었겠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부모가 만들어준 완벽한 환경에서 귀하게만 자라온 너같은 녀석들의 본능일 테니까. 그러한 본능을 그대로 담은 입맞춤이 달콤할 리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애써 밀어내려는 나를 결박한 채로 거칠게 입안을 헤집는 너의 혀 끝에선… 너무도 쓴 맛이 났어. 
 


 

 그렇게 맞이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너를 대신한 수표 몇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처방받은 약을 사서 먹었다. 심장 한 켠을 쥐고 흔드는 것 같던 통증은 그렇게 산 약으로 겨우겨우 숨 쉴 여유를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더 나약하고, 초라해져만 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관계를 가진 이후로 나를 대하는 너의 태도에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오늘 밤 시간 되지? 저번보다 더 줄게. 대신 좀 꼴리게 챙겨 입고 와. 그딴 늘어진 티셔츠 말고."


 그리고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꺼이 너의 장난감이 되어주는 수 밖에. 나는 이번 학기를 마치고 수술을 해야 했다. 그것이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고, 나는 그때부턴 살기 위해 너의 품에 안겼다. 

 거칠게 움직이는 너의 행위를 감당하느라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갔고, 그럴 때마다 너는 마치 고문을 즐기는 사람처럼 나를 깨물고, 내 머리채를 억세게 잡아 쥐고, 폭력에 가까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면 잠든 내 옆에 돈을 두고, 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깬 내가 옆자리에 누워있는 네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정말 어떤 표정으로 너를 바라봐야 할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으니까. 




"준호야, 너 코피나."

"…아, 죄송해요."

"죄송? 아니 뭐, 니가 코피나는 데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조별 과제를 두고 한 자리에 모인 과 사람들 틈에서 나는 코피를 쏟았다. 그날 늦은 새벽까지도 너는 나를 품에 안고 거칠게 몸을 놀렸고, 나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을 소리없이 감당해 내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몸상태가 더 엉망이었다. 아침에 변기를 붙잡고 한 시간이나 토악질을 해대느라 위액을 다 쏟아내었고, 그 탓에 얼굴은 볼품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대충 손가락으로 막아 낸 채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때, 


"어? 근데 너 이거… 멍든 거야?"

 나를 향해 손끝을 두며 민희가 의아함을 담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하얗게 드러난 내 목덜미로 향해 왔다. 미처 생각치 못한 것이었다. 지난 밤에 네가 남겨놓은 흔적이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키스마크라고 부르기엔 그 이름이 너무도 낭만적이었다. 그것은 그저 폭력과도 같은 입맞춤의 흔적이었다. 당황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낀 순간, 나는 그 자릴 박차고 나서야 했다. 들켜선 안 될 무언가를 들킨 내 심장이 정처없이 뛰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코피도 잊은 채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복도에 기대서서 잠시 호흡을 진정 시켰다. 그리고 그때 들은 그 이야기들에…
 

"쟤 뭐냐? 얌전하게 생겨가지고…."

"술집 끝내고 아줌마들이랑 2차라도 뛰다 오는 거 아냐?"

 

 나를 두고 조소를 던지는 그 목소리들에, 


"그런 거 맞을걸. 걸레새끼."


 네 목소리가 분명한, 그 지독히도 낮은 음성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으로 후회하게 만들었어. 살고 싶어 했던 모든 순간들을. 뭐 좋은 인생이라고 이렇게 아등바등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는 건지…. 그저 다 놓아 버렸다면 이렇게 상처 받지도, 이렇게 눈물을 흘릴 일도 없었을 것을. 








**



 겨울이 성큼 다가오던 때에 나는 기말고사를 끝내자마자 입원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바를 나갔던 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를 마주하고야 말았다. 내가 너의 연락을 계속 피해서 그런 걸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뭐, 사실 그 눈빛에 좋은 감정이 들어간 적이 있었나 싶지만. 


"그까짓 알바 좀 때려치우면 안되냐?"

"니가 뭔데."


 입에 물던 담배를 바닥으로 튕겨내며 넌 꽤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불만인지는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모르겠지만, 난 더이상 너의 앞에서 그저 그런 하찮은 장난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서 벌어먹는 돈이 모자라?"

"이은상."

"그럼 차라리 나 말고 딴 새끼를 한 놈 더 잡고 뒹굴어. 그게 편하지 않겠어?" 


 그래. 너에게 난 그저 더러운 걸레새끼일 뿐일테지. 같은 남자 주제에 네 품에 안겨서 밀려드는 고통에 어쩔 줄 몰라하고, 눈물이나 질질짜고,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음을 참아내는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지만 말야… 이은상, 너 같은 새끼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거야…. 너한테 내가 걸레새끼였던 것 보다 훨씬 더…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

"넌 정말 개새끼야."




 넌 나한테 정말… 개새끼였다는 거.


 그 한 마디를 하고 나는 너를 스쳐 지나갔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너를 마주하는 시간들은 언제나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할 생각이었다. 너와 함께 했던 그 지옥같던 모든 시간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매번 내게 고통을 주며 쾌락을 느꼈던 너란 존재를 잊고,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게 나를 상처주던 너의 모진 말들도 잊고, 이렇게 너를 마주하게 된 어느 겨울 날의 시린 공기도 잊고… 

 그럼에도… 너무도 간절했던 너의 손길과, 너의 숨결과, 너의 향기도… 모두 잊을 생각이었다.





**



 길게 이어지던 방학 내내 나는 병원 생활을 했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시기에 맞춰 퇴원을 했다. 어차피 휴학을 신청했기 때문에 방학이란 시간에 큰 의미는 없지만, 어쨌든 더이상 찾아오는 이 없는 병원에 답답하게 갇혀 있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비좁고 초라한 골목길 안. 화려하게 빛나는 외제차의 풍경이 너무도 이질적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것은 비현실에 가까웠다. 그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았다. 그 차에 기대서서, 시린 겨울 바람을 온 몸으로 견디며… 나를 기다리던 너의 모습은. 그래서 어쩌면 정말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홀로된 시간 속에서 늘 꿈 꿔왔던 것처럼 그저 꿈은 아닐까, 하고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내 발목을 잡아 끄는 그 목소리는 결국 나를 현실로 끌어놓고야 말았어. 넌 모르겠지. 지독한 현실 속에서, 나를 향한 너의 시선은… 

 늘 두려우리만큼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는 걸. 





"…차준호."

"……."

"할 말 있는데…."


 너를 스치고 지나친 내 등 뒤로 익숙하지 않은 떨리는 목소리로 너는 내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가 결국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 너의 모든 걸 잊어내기 위해 애를 썼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냥 모른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렇게 너를 지나치려 했는데, 그래야 맞는 건데… 난 결국 너를 향해 돌아서고야 말았지. 또 너에게 상처 받으리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하고 꺼져. 네 얼굴 보고 있는거,"

"……."

"역겨워서 토나와."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이 어긋나 있었다. 나는 너한테 너무도 가볍고, 쉬운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 한들 그것은 그저 미련한 꿈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사실은 보고싶기도 했다고… 잊으려고 했는데, 참 미운 너인데도, 그런 너를 잊는게 쉽지 않았다고… 그런 말들이 어울릴 리가 없으니까.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는 너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찔러댄 주사바늘에 손등 위로 파랗게 자리잡은 멍자국을 숨기느라 여력이 없는 나. 그런 너와 내가… 어울릴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우리는 또 서로에게…





"그냥 뭐… 혹시 너 아직도 걸레짓 하고 다니는가, 해서."

그 모든 마음을 숨기고,



"이번엔 어떤 새끼 만나는 건데."

그저 그런 걸레새끼에,



"그 새끼한텐 얼마 받는지 모르겠는데, 더 필요하면 연락해. 사실 너 좀,"

"……."

"데리고 놀만은 하니까."


개새끼가 될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거짓말 쟁이가 될 뿐이었다.






Liar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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