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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r 上

이은상 × 차준호




Liar 




 그런 자리는 나에게나, 너에게나 익숙치 않은 것이었다. 복학을 하고 처음으로 과 동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벌써 3차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취할 대로 취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건 길게 이어진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너와 나 뿐이었다. 그래서 난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마음 놓고 너를 바라볼 수 있었지. 

 오다가다 학교에서 몇 번을 마주쳤을 얼굴인데도 나는 새삼스레 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소주와 맥주가 섞여 들어간 술잔을 감싸 쥔 손은 내 나이 또래의 사내 녀석 답지 않게 너무나 희고 가늘었다. 저를 향한 집요한 내 시선을 느낀 네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을 때, 그 담갈색 눈동자 안에 내가 가득 들어 차 있는 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었다. 
 

"몇 시까지 일해?"

 너는 그 소란스런 술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새벽이 늦은 시각. 우스운 노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서빙을 하던 너의 모습을, 같은 과 아이들인 우리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결국 알바를 하던 너를 동기들 중 한 명이 반 강제적으로 우리 자리에 앉혀 놓았고, 그 뒤로 너는 그동안 얼굴만 알고 지내왔던 과 아이들의 술주정을 들어주랴, 사장의 눈치를 보랴, 꽤 난처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그런 너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건 바로 나였겠지만. 


"안 들려? 몇 시까지 일하냐고. 너."

 

 삐딱한 말투로 그렇게 묻고는 반쯤 채워져 있던 잔을 들어 올려 한 입에 술을 털어내었다. 이미 꽤 많은 양을 마셨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말짱했다. 술이 센 편이기도 했지만 그 날은 특히 더 그랬다. 이미 내 주량을 한참 넘겼다는 건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내 시야에 들어오는 너의 얼굴은 너무나 또렷하게 다가왔다. 

 결이 좋아보이는 갈색빛 반곱슬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곱게 접히는 눈매. 그리고 붉은 빛을 띠운 조그만 입술까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너는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상냥한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뚝뚝한 말투로 그렇게 대답을 했었지. 너의 그런 태도가 기분 나쁠 법도 한데 난 이상하게 나를 향해 날을 세운 너의 표정과 말투에도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는 딱히 친해질 이유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또 친해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관계였다.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년.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너와 내가 서로를 알아가는 건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 사이가 조금 더 발전하여 친구라던가 혹은 그 이상의 관계로도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나를 향해 유난히도 딱 잘라 선을 그었어. 그때 어쩌면 너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는 지도 몰랐다. 내가 너를… 꽤 아프게 하고 마리란 것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얼마나 받냐?"

 너는 내가 던지는 질문에 뭐 하나 성의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의 대화가 다섯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비어있는 잔에 홀로 술을 채워 넣는 동안에도 내 모든 신경은 그런 너를 향해 있었다. 넌 믿지 못하겠지만, 아니, 나 조차도 믿지 못했었지만… 그때 사실 난, 

 네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네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 갔었다. 친구 녀석들과 무리를 지어 간 날이면 너는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 내게 사소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 네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꽤 서운하기도 해서, 어느 날은 나 홀로 너를 찾아 가기도 했었지. 그제서야 너는 그 고운 얼굴을 구기며 나를 향해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너 되게 할 일 없구나."


 그래.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굳이 너처럼 밤새 일을 하지 않고도 쓰고도 벅찰 경제적 여유가 있었고, 굳이 남들처럼 공부를 하지 않고도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없었으니까. 물론 너는 그런 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지만. 

"어차피 일 할 거면 좀 더 나은 데서 하지 그래. 분위기 좋은 와인바나, 아님…"

"……."

"호빠 나가도 잘 어울리겠는데, 너. 아줌마들이 좋아하게 생겼거든."


 내가 그 말을 뱉어냈을 때, 너는 내가 주문한 술을 테이블 위로 올리던 손길을 멈추곤 꽤 매서워진 눈매로 나를 노려보았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내게 여전히 차갑게 구는 너의 태도에 조금 빈정이 상했을 뿐. 그러나 이미 뱉어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나는 애써 떳떳한 척, 너의 냉기 가득한 시선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너는 아마 짐작도 못 할 거야. 


"왜 자꾸 여기와서 알짱 거리는지 모르겠는데…"

"……."

"그만 꺼져줄래?"

 너는 그 한 마디를 뱉어내곤 망설임없이 내게 등을 보였다. 그렇게 네가 내게서 돌어서던 순간, 유난히도 붉게 빛을 내던 너의 입술이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때 부터 였던 것 같다. 내가 너를 마주치는 순간마다 너의 입술을 관찰하 듯 바라보게 된 것은. 



 




 나는 그날 이후로 너에게 부쩍 많은 관심을 가졌다. 비어 있는 강의실을 지나치다 문득 창가로 너의 모습이 보이면 난 그 자리에 딱딱하게 몸을 굳힌 채로 한참이고 너를 관찰해야 했다. 창가로 들어서는 따사로운 햇살이 너를 품에 안을때, 그 햇살 속에서 부지런히 작은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써 내려 갈 때, 그러다 내려앉은 눈꺼풀을 못이기고 까무룩 잠이 들 때. 그 모든 순간들을 나는 넋을 놓고 눈에 담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들 속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잡아 끌었던 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할 때마다 버릇처럼 깨물고 있던… 너의 입술이었다. 



"애가 생긴 것 답지 않게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

"……."

"걔 4년 전액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닌다? 너 그거 아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관심 없는 척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사실 강민희가 늘어 놓은 너에 대한 이야기들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때 난 너에 관한 거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었으니까. 


"근데 가정 형편이 엄청 어려운 가 봐. 매일 그렇게 새벽까지 알바하고, 두어 시간 자고 학교 나온대. 그러면서도 맨날 과탑 하잖냐."


 그렇게 전해 들은 너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했고, 그 덕에 바닥을 기는 성적과는 상관 없이 영어는 꽤 할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이 대학의 재단 이사장이 나의 삼촌이었고, 아버지는 내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 도서관을 지어 주셨다. 나는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그런 내가, 그런 너와,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사실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는데, 사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 

 나와는 상관도 없을 그런 이야기들에 가슴 한 쪽이 먹먹하게 아픈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그 역시도 너는 믿지 못하겠지.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나는 그렇게 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너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맞추는,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자꾸만 너를 두고 그런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워서 나는 그 모든 일에 너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때 난 좀 비겁했어. 난 너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데, 너는 그런 나에게 잔인하리만치 무관심한 그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애가 타고, 나 혼자 더 많은 것을 원해가는 그런건… 내겐 익숙치 않은 감정이었으니까. 



 나는 어느 늦은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너를 기다렸다.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휘청이며, 피곤에 젖어 눈을 부비는 너의 앞을 막아섰지. 술 냄새를 풍기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너는 대번에 고운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구겼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나를 향한 너의 냉랭함에 마음 한 켠이 아파왔었다. 그때 정말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너를, 

 결국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사실 그 감정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네 모습이 꿈에서도 아른 거리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너를 떠올리고, 너로 인해 하루 종일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지만, 그래서 결국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인정하고 말았지만, 



"차준호."

"비켜."


 나를 향한 너의 차가운 눈빛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게만 그렇게 매정한 너의 태도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너네 집 존나 어렵다며. 찢어지게 가난하다며."

"……."

"나랑 한 번 잘래? 아마 그딴 술집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


 그래. 그 방법은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최악이었어. 나는 내게 모질게 구는 너를 용납할 수 없었고, 행여 내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걸러내지 않은 배려 없는 말들에 네가 상처 받을 수도 있단 것은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쓰레기에 개새끼 같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그저 너를 안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냥 니가 좋았고, 일에 지친 네가 안쓰러웠고, 네게 입맞추고 싶었다. 근데 꼴에 자존심이란 것도 있어서 차마 먼저 너에게 고백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좀 더 따뜻한 방법으로 네게 다가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나약한 너를 휘두르고 싶단 비겁함만 있었을 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기다렸다. 너의 작은 손바닥이 내 뺨을 내리칠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축 쳐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저 내가 술이 취했던 건가. 


"…얼마 줄건데."

 헛소리가 들리나 싶었다. 늘 나에게만 날카롭던 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힘을 잃고 애달프게도 마음에 와 박혔다. 다급하게 잡아 챈 너의 작은 손이 얕은 떨림을 전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너를 안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에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치 않았으니까. 그래. 난 겨우 그 정도의 놈이었으니까. 

 너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서 순간 바보같게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혹시 너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너 역시도 나의 품에 안기길 기다렸던 건 아닐까…. 네가 이런 내 생각을 알았다면 또 그 고운 얼굴을 구기며 인상을 썼겠지. 그건 온전히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테니까. 

 네가 나를… 좋아했을 리가 없으니까.



 하얗게 드러난 너의 나신은 스치는 손길 하나에도 크게 몸을 떨었다.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너의 애널로 발기한 나의 페니스를 밀어 넣을 때, 그래서 네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이 하얀 뺨을 타고 떨어져 내렸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누군가에게 안기는 게 처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너를 처음으로 품에 안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그 상황에서도 그게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더 거칠게, 너의 모든 것을 헤집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래. 다시 생각해 봐도… 나에게 너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허리 아래로 끊어질 듯한 얼얼한 고통이 밀려들 텐데도 너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로 그 모든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고, 점점 격해져 가는 내 몸짓에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이 또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너의 목 언저리에 아프게 이를 박아 넣었지. 



"하, 하지마."


 그제서야 넌 다급한 손길로 내 가슴을 밀어내었다. 물론 그 작은 손으로 나를 밀어낼 수 있을리가 만무했지만.


"참지 마, 씨발. 할 맛 안나."

 나는 여전히 나의 것을 너의 안에 밀어 넣은 채로 그렇게 읊조렸다. 나는 네가 내 아래에서 좀 더 애처롭게 굴기를 원했다. 젖은 너의 얼굴을 닦아 주고 싶었고, 나로 인한 쾌락에 젖어 달뜬 신음을 흘리는 너를 마주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네가 욕심이 났으니까. 정말로 너를 가지고 싶었으니까…. 

 나는 너의 붉은 입술 위로 내 입을 맞췄다. 아니, 그건 맞췄다기 보단 거의 삼켜낼 듯 물어 뜯었단 표현이 더 맞았다. 너의 모든 것을 잡아 먹기라도 할 듯, 나는 너의 입 안을 거칠게 헤집어 놓았고, 나를 밀어내려는 너의 가는 손목을 침대 위에 결박한 채로 입맞춤을 이어갔다.  


 

 수도 없이 상상했던 너와의 입맞춤. 그리고 섹스. 그 모든 것을 이뤄내고, 지쳐 잠든 너의 옆으로 수표 몇 장을 두고 모텔을 나서면서… 참 당황스럽게도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내가 강제로 너를 취한 것도 아닌데, 너도 분명 나를 쫓아 왔는데,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그땐 알지 못했다. 나는 결코 너한테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란 걸. 단 한번도 내 진심을 너에게 표현할 수도 없으리란 걸. 결국 나는 너의 앞에 내 모든 마음을 숨기고, 그저 그런 개새끼에 거짓말 쟁이가 될 뿐이란 것을. 






**




 나는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었다. 주말마다 클럽을 돌며 원나잇 상대를 찾던 내가, 그렇게 잠자리를 가졌던 이와는 두 번은 만나지 않는다는 철칙을 착실히도 지켜왔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와 몸을 섞었다는 것은 너와 나를 꽤 가까워지게 해주리라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내게 차가웠고, 무심했으며, 스치는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처음 시작은 좀 엉망이었어도 자연스럽게 너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또…


"오늘 밤 시간 되지? 저번보다 더 줄게. 대신 좀 꼴리게 챙겨 입고 와. 그딴 늘어진 티셔츠 말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너와 함께 있고 싶었고, 너를 내 안에 두고 싶었고, 너를 온전히 갖고 싶었다. 그러나 너의 주위로 견고하게 쌓아진 벽을 뚫고 들어서기엔 나는 너무 속이 좁고, 겁이 많았으며, 그 모든 것에 서툴었다. 
 


 너와의 잠자리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어 갈 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너는 여전히 모든 신음을 참아내며 내 거친 움직임을 받아 내었고, 그때마다 나는 너를 깨물고, 네 머리채를 억세게 잡아 쥐고, 너에게 폭력에 가까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면 잠든 너의 옆에 돈을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사실 그건 도망치는 것과도 같았다. 밤새 이어진 그 관계에서… 왠지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사건의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준호야, 너 코피나."

"…아, 죄송해요."

"죄송? 아니 뭐, 니가 코피나는 데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조별 과제를 두고 한 자리에 모인 과 사람들 틈에서 너는 코피를 쏟았다. 그날 늦은 새벽까지도 나는 너를 품에 안고 거칠게 몸을 놀렸고, 너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을 소리 없이 감당해 내었다. 안쓰럽게 창백해진 그 얼굴에서 나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대충 손가락으로 막아내고 너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때,


"어? 근데 너 이거… 멍든 거야?"


 눈치 없는 강민희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강민희의 손끝을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은 곳은 너의 하얀 목 언저리였다. 내가 강하게 남겨 놓은 흔적이 붉게도 자릴 잡고 있었다. 키스마크라 부르기엔 그 이름이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그것은 그저 폭력과도 같은 내 입맞춤의 흔적이었다. 당황스레 얼굴을 붉혀가는 너는 재빨리 그 자릴 박차고 나섰고, 모두의 시선은 알듯 말듯 묘한 호기심을 띠워 갔다.  


"쟤 뭐냐? 얌전하게 생겨가지고…."

"술집 끝내고 아줌마들이랑 2차라도 뛰다 오는 거 아냐?"

 

 동기 녀셕들은 저마다 질 낮은 농담을 한 마디씩 던지며 킥킥 거렸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거 맞을걸. 걸레새끼."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당황스러웠다. 너와 나의 그런 관계를 알아 챌까봐. 그러다 나 혼자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엿 같은 상황까지 알아 챌까봐. 그래서 나는 아닌 척 발뺌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 어울리지 못하는 녀석이었고, 모두의 동정을 받는 안쓰런 대상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너를, 이런 내가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쪽팔렸었나 보다. 참 우습게도. 




 겨울이 다가왔을 때, 그래서 너의 하얀 손이 자꾸만 빨갛게 얼어가는 게 눈에 띠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나치던 걸음을 멈추고 너를 위한 장갑을 샀다. 그저 길에서 파는 싸구려 장갑이었고, 나는 원래 값싼 물건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너에게 그저 무심하게 던지듯 건네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무심하게', '던지듯' 건네주는 게 어떻게 이뤄져야 자연스러울지가 꽤 고민이 되었다. 싸구려 장갑 두 짝은 그렇게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차 한쪽 구석에 처박힌 채로 시간을 흘려 보냈고, 그러다 결국 엄한 녀석에게 무심하게 던지듯 건네주고 말았다. 


"강민희. 이거 너 가져. 오다 주운거야."


 나는 네가 나와의 관계를 갖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다른 일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겨울이 깊어 갈 때까지, 너는 여전히 그 소란스런 술집에서 새벽까지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나와의 관계를 갖는 날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으니 그 외의 날들엔 항상 그렇게 일을 해 왔던 것이다. 

 동기들 앞에서 코피나 흘리던 너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 미련스러운 태도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게 좀 더 다가왔으면 좋을 걸. 내게 좀 더 벽을 허물고 기대주면 좋을 걸. 너를 안는 내게 거짓이라도 사랑을 속삭여 준다면… 참 좋을 걸. 

 일을 마치고 나서는 너의 앞을 또 한 번 막아 세웠다. 너에게 더 많은 돈을 줘서라도 그 따위 알바를 당장에라도 때려 치우게 할 생각이었다. 


"니가 뭔데."


 알바 좀 때려치우라는 내 외침에 너는 그렇게 대답한 게 전부였다. 냉랭한 눈빛이 또 한 번 나를 향한다. 


"나한테서 벌어먹는 돈이 모자라?"

"이은상."

"그럼 차라리 나 말고 딴 새끼를 한 놈 더 잡고 뒹굴어. 그게 편하지 않겠어?" 


 넌 모르겠지. 그 말을 뱉어내면서도 사실 난, 너에게 건네 주기 위한 장갑이 담긴 가방을 등 뒤로 감추고 있었다는 걸. 강민희에게 던져줬던 그 장갑을 쪼잔한 새끼란 소리까지 들어가며 다시 찾아 왔다는 걸. 그렇게 모진 말들을 뱉어내면서도 너에게 그 장갑을 언제쯤 줘야 할까에만 신경쓰느라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말에 너의 표정이 어땠는지, 미처 알아챌 틈도 없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

"넌 정말 개새끼야."


 그러나 너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내게 '개새끼' 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건 익숙치 않는 일이라 나는 내가 너에게 했던 심한 말은 싸그리 잊은 채로 너를 원망했다. 너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 주제에 네가 나한테 상처를 줬다고만 여겼고, 그런 너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네가 나를 지나쳐 간 이후로 나는 너를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우리에겐 방학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너는 내 연락을 철저히 무시했다. 네가 일했던 술집에서 밤새 너를 기다리도 했고, 텅 빈 학교를 찾아가 괜히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너를 만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난 하루도 너를 잊지 않고 지냈다. 담배는 점점 더 늘어갔고, 술에 취한 날들도 많아져 갔다. 그럴 때마다 참 우습게도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난생처음 보는 여자와 하룻밤의 불장난 같은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그 이름을 불렀다. 


"준호야…"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너의 이름을, 그렇게 따뜻하게도 불러 볼 수 있다는 것을. 


 



 방학이 거의 끝을 보일 즈음에서야 나는 너의 집을 알아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망설인 끝에 나는 결국 너의 집을 찾아갔다. 미련하고 바보같은 짓이란 걸 알았지만 더이상 내 자신을 말릴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니가 내 안에 이렇게 깊게 들어왔는지 헤아려 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네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너에게 말하고 싶었다. 

 사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처음부터 너에게 진실을 말해본 적 없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그렇게 널 좋아했다고. 


 

 살을 에일듯한 시린 겨울 바람 속에서 네 시간이나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들은 네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 몇 초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가 뿜어내는 냉기에 난 준비했던 말들도 모두 잊고 그저 멍청히 허공만 바라봐야 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듯 눈길 한 번 주지않는 네가 무심하기만 했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그 순간에도 난… 빨갛게 얼어붙어 있는 너의 손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차준호."

"……."

"할 말 있는데…."


 나를 스치고 지나친 너의 등 뒤에서, 난 떨리는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 짧은 한 마디를 뱉어내는 게 너무도 힘들어서 나는 우습게도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내 부름에 걸음을 멈춰선 너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무심한 눈길이 나를 향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하고 꺼져. 네 얼굴 보고 있는거,"

"……."

"역겨워서 토나와."


 차갑게 쏘아붙이는 너를 앞에 두고 난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말들 중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이 어긋나 있었다. 나는 너한테 역겨운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너에게 진심을 말한다 한들 네가 그 마음을 받아들여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두려워졌다. 혹시 내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까봐. 아니, 어쩌면… 진심을 담은 내 고백에, 너 역시도 진심으로 거절을 할까봐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결국 나는 또 너의 앞에서…


"그냥 뭐… 혹시 너 아직도 걸레짓 하고 다니는가 해서."

 내 모든 마음을 숨기고,


"이번엔 어떤 새끼 만나는 건데."

 그저 그런 개새끼에,


"그 새끼한텐 얼마 받는 진 모르겠는데, 더 필요하면 연락해. 사실 너 좀,"

"……."

"데리고 놀만은 하니까."


 거짓말 쟁이가 될 뿐이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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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은 준호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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